사고와 표현 - 어문학부
SBS 유머 스페셜을 보고
이제 유머의 시대다. 유머러스한 남자가 미인을 얻고, 개그맨이 아니더라도 유머러스한 가수나 연기자는 예능의 신이 된다. 유머러스한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이 잘되는 기업이 되며 유머러스한 광고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유머는 상대방을 한순간에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고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 삐친 친구에게는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유머러스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돌릴 수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유머란 통하지 않는 딱딱하고 엄격한 사회라고 생각했었다. 그 어린나이에 그렇게 느꼈던 것은 첫째로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가끔 병가를 내신 담임선생님을 대신해 나이 지긋하신 남자선생님이 들어오시곤 했는데 그 선생님들은 대부분 딱딱하고 엄격하셨다. 반에 한 명씩 있는 까불이들은 꼭 그럴 때 눈치없이 나서서 매를 벌곤 했다. 까불이들은 처음 보는 낯선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한마디씩 하면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 선생님은 “이리 나와!” 라고 말하시곤 큰 몽둥이로 때리시고 불필요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곤 하셨던 것 같다. 내가 볼 때는 꼭 매를 들 만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던 것은 내가 볼 때는 아마 선생님의 권위가 손상되었거나 선생님에게는 농담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추석 특선 영화나 성탄 특선 영화로 공중파에서 보게 되는 헐리우드 영화들은 내게 큰 로망을 안겨주었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10살 남짓한 아이가 2인조 강도단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너스레를 떠는 유머러스함이 부러웠다. 그리고 미국은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유머러스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취임식이나 공식행사장에서 연설을 하면서 유머를 던지는 장면은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미국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경쟁자 더글러스가 링컨에게 “당신은 교활하고 부도덕한 사람이오.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란 말이오”라고 공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링컨은 “만일 제게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면,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하필 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라고 답하여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1) 왜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그렇게 재미가 없고 100여 년 전에 살았던 미국대통령보다도 더 고지식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도 우리나라에서 유머를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TV광고에서부터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그러니까 90년대 후반대부터부터 였다. 어떤 전문가는 구체적으로 1997년, IMF를 전후한 시기부터라고 한다. 유머광고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좀 더 친밀하게 만들어주고 소비자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며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주의를 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그 당시 불황기로 잔뜩 움츠렸던 기업이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기 때문에 유머광고가 떠오르게 되었다. 예로 김국진과 송혜교가 함께 나왔던 컴퓨터 광고, 거기서 나왔던 김국진의 대사 “밤새지 말란~말이야~”는 그 때 당시 전국적인 유행어가 됐었고, 이창명이 철가방을 들고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고 외쳤던 그 광고 역시 히트를 쳐서 “짜장면 시키신 분~”은 전국적인 유행어가 됐었다. 지금은 유머가 담겨있지 않는 광고는 찾기 힘들정도로 유머광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선생님들 또한 한결 부드러워지셨던 것 같다. 수업 중엔 너무나 무서워서 애들이 뒤에서 ‘마귀 할멈’이라 부를 정도였던 사회선생님은 수련회나 학예회에 빠지지 않는 선생님들 장기자랑 코너에서 항상 춤추러 나오셔서 열성적인 댄스로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시곤 했다. 그것은 길이길이 아이들 사이에서 회자되어 사회선생님은 동시에 ‘유머러스한 선생님’이 되었고 인기폭발이 되었다. 그 뒤로 사회 수업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걸 보면 또 얼마나 유머의 힘이 대단한가 알 수 가 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뉴스 데스크 위에서 딱딱한 표정과 형식적인 말투로 우리와 거리감이 느껴졌던 아나운서들은 예능프로에 나오면서 아나운서들의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느 개그맨 못지 않은 입담으로 웃기기도 했다. 그런 아나운서를 뽑는 방송국 자체가 변하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한 때 웃기는(?) 아나운서로 인기 고공행진을 했던 김성주 아나운서는 몇 번의 면접의 고배를 마신 끝에 mbc 방송국 면접에서 김흥국 성대모사로 모든 면접관들을 웃기고 합격했다고 한다. 그렇게 방송사 뿐 아니라 다른 기업에도 펀경영 열풍이라는 것이 불고 있다. 그 예로 세스코, ktf, 모토로라코리아, 오리온, 삼성 에버랜드 등이 있다. 대표적 제과기업인 오리온은 회사원들이 행복한 회사, 그래서 미치도록 출근하고 싶은 회사가 모토다. 사내에 ‘펀 스테이션’이라는 각종 게임과 만화, 과자, 커피등을 비치한 까페와 개성을 표현하는 맵시데이, 최우수 사원을 선발하는 독수리 시상식, 대학축제를 재현한 스프링페스티벌등 쉴새없이 열리는 다양한 이벤트를 보면 알 수 가 있다. 이렇게 기업들이 달라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단순히 재미가 넘치는 일터를 만들자는 의미뿐 아니라 ‘재미’가 곧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2) 그런 기업체들 또한 유머감각을 갖춘 사람들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 면접관으로 참여한 취업정보업체 한 관계자는 "기업체 관계자들이 인물은 별로였지만 서글서글하고 위트 있게 답하는 한 지원자에게 '저런 애들이 일을 잘한다'며 높은 점수를 주더라"고 말했다.(3) 그리고 심지어 사극에서도 유머열풍이 불고 있다. 허준, 대장금, 선덕여왕 등에서 무거운 극 분위기를 한결 가볍게 해주던 조연들이 있었긴 했지만 최근 지진희, 한효주가 나오는 ‘동이’라는 드라마는 정말 새롭다. 왕 자체가 유머러스하기 때문이다.
유머는 이제 어느샌가 모르게 우리 사회 전반의 거의 모든 것과 결합되었다. ‘유머가 이긴다’의 책 저자는 유머감각은 타고난 것이 아닌 후천적 스킬이므로 누구나 유머리스트가 될수 있다고 한다. '유머는 자신에 대한 호감도와 관심을 높이는 탁월한 기술이다. 사람을 사랑하게 하고 스스로 사랑받게 만드는 놀라운 기술이다. 삶의 태도를 바꾸고 인생을 바꾸고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는 멋들어진 도구이다. 물론 유머만이 유일하게 효과를 발휘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유머만큼 효과가 좋은 것은 없다. 유머는 자신을 위한 노래이며 사랑이다.' 가수나 탤런트가 오락 프로그램에서 유머감각을 발휘해 일약 스타로 부상하는 일은 이제 이변도 아니다.(3) 이처럼 사회 대세로 자리잡은 유머는 경제적으로, 감정적으로 각박해진 사람들을 잠시나마 무장해제시키고 웃음을 주는 효자이다. 처음 본 어색한 사이도 몇 년 알고 지낸 사이처럼 만들고, 취업난 시대에 경쟁력이 되게 하며, 대하기 어려웠던 사이도 유머 한 방으로 서로 웃으며 한결 긴장감을 풀어보는 것이 어떨까?
(1) 긍정의 대화법 - 유쾌하게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조은영, 위즈덤 하우스, 2009년
(2)유머경영 ‘활짝’ - 잘나가는 기업 속은 ‘재미덩어리’
한경매거진. 한경비즈니스 2005년 8-504호
(3) ‘이젠 유머가 경쟁력!‘ - 부산일보, 박종호 기자 2010년 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