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와 표현 - 어문학부
어문학부 2010260126 조은섭
어떻게 하면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어두컴컴하고, 온도도 딱 알맞게 유지되는 강의실에 팔짱을 끼고 앉아있으면 전날 술자리에서 마구 달린 사람이 아니더라도 금세 졸음이 쏟아지고 만다. 게다가 발표자는 고개 한번 움직이지도 않고 원고에 머리를 콕 박은 채 노곤한 목소리로 자장가를 읇조리기에 여념이 없다면?
저번 주 목요일. 그러니까 우리가 SBS 스페셜을 시청하기 전날 어떤 수업에서는 외부에서 초빙된 강사 분께서 수업을 진행하셨다. 수업의 주제는 프레젠테이션 면접 기술. 내용만 보면 어떻게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분이 제시한 해답은 무엇이었을까? 그분께서 과연 해답을 ‘유머’ 라고 내리셔서 내가 이 내용을 유머 비평문에 사용하는 걸까? 그렇게 대답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좋은 프레젠테이션이란 발표가 끝나고 나서 불을 켠 순간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여관방에서 나온듯한 표정으로 앉아있지 않는 거라고 한다. 우리는 좋은 발표를 위해서 유인물을 만들고, 파워포인트 문서를 예쁘게 꾸미는데 이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청중을 잠재우지 않는 발표를 만드는 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강연 한 토막의 주제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청중을 자도록 허락하지 않기 위해서. 청중을 계속 깨어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계속 뭔가 새로운 것을 느끼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것. 단조로운 분위기를 깨는 것. 이 문제는 꼭 프레젠테이션 할 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짤방들 말이다. 조금이라도 긴 글이 올라오면 네티즌들은 으레 ‘좋은 글이네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리플을 달아 글을 아예 안 읽고 지나가기도 한다. 이런 얄짤없는(?) 세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글 작성자들은 글머리에 재미있는 사진이나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넣게 되기에 이른다. 바로 짤림방지 즉 짤방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자기만족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우리들은 이미 짤방, 유머의 힘을 빌어 내 글을 네티즌들이 무시하고 지나가지 않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참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왜 우리들은 아예 유머란 것 자체를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그 SBS 스페셜을 보고 나서야 ‘아 이런 거로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일까? 음… 내 경우에는 이랬다. 유머를 잘 사용하면 좋다는 것은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지만 정작 유머를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머가 단지 심심풀이 땅콩으로 쓰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 프로그램 내용의 절반 이상은 독해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나아가 유머를 다루기 위해 유머를 배울 자세를 갖춘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프로그램 출연자셨던 이영식 사장님의 유머를 배우고자 노력하시는 그 모습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평생 동지라고 여기던 직원들 마저 떠나갔습니다. 직원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다다가는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평생을 쉬지 않고 앞만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느라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60이 되야 깨달았습니다." 그가 이 말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유머가 어떤 곳에 쓰여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많이 후회됐다. 언뜻 보기에 유머는 신제품 개발보다 훨씬 덜 중요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진가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는 인생의 막바지에 와서야 절실히 깨닫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그 ‘유머’ 라는 거인을 잡기 위해 시작한 그의 노력은 눈물겨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마터면 같은 삶을 살뻔했을 나로서는 50년 후의 나를 바라보는듯한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더욱 나는 그 아저씨의 얼굴에 웃음이 그치치 않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도. 이영식 사장의 일화를 통해 유머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면 다음은 이 프로그램의 두번째 메시지를 해독할 차례다. “언제 유머를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기 전에 먼저 유명한 유머 일화 하나를 보기로 하자. 영국 국회에서 대기업 국유화 문제로 설전 중일 때 처칠 수상이 화장실엘 갔다. 조금 있다가 노동당 당수 애틀리가 들어서자 소변보던 처칠은 얼른 구석자리로 옮겼다.“왜, 내가 무섭수?”애틀리 말에“당신은 뭐든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려고 들지 않소”처칠의 유머로 유쾌하게 웃고 난 애틀리는 그날 국유화 문제를 문제삼지 않았다고 한다. 1) 이 유명한 윈스턴 처칠의 유머에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내용은 아무리 날을 세우던 사이인 ‘정적’ 사이일지라도 상대방이 던진 유머에 호응할 줄 아는 관대한 기풍이 아닐까 싶다. 만약 처칠이 체통 찾기에 급급해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중 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보수당인 한나라당 대표인 정몽준이 민주당 대표인 정세균한테 이런 조크를 던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쟁 종식은 고사하고 다음날 민주당 논평에서 정몽준을 보고 성희롱 하지 말라는 성명이나 안 내면 다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SBS 스페셜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메시지는 정말 뚜렷하게 다가왔다. 적재적소에 유머를 사용하라! 하지만 유머가 용인되지 않는 환경에서 유머는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뿐이다. 더 나아가서 생각하면 무궁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머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결국 그 구성원 모두를 피곤에 지치게 할 뿐이다. 맨 처음 도입부에 그렸던 그 어두컴컴한 강의실같이 말이다. 끔찍한 일이다. 너무나도 지루하고 복잡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것이다. 정신은 몽롱해지고….. 결국은 또다시 꾸벅꾸벅 졸게 되겠지. 이제 유머의 사용이 우리네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됐으니, 그런 무미건조한 수학문제집같은 사회가 좋지 않다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결 방안은 간단하다. 상대방이 던진 유머에 재치있게 웃어줄 줄 준비를 하는 것. 사회란 것은 리바이어선이라는 괴물에 비유할 정도로 난해하긴 하지만 결국은 너와 나가 만나서 이루는 모임일 뿐이다. 내가 상대방의 조크에 웃어준다면 전체 분위기 또한 한결 나아질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면 나 또한 내가 그를 존중한 만큼의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즉 유머 사용의 적기는 따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이 매순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머는 통하고 흘러야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선순환 관계가 이어진다면 우리의 주변에는 항상 ‘얼음을 깨는’ 부드러운 유머로 가득차게 되지 않을까. 누구나 짐을 내려놓고 기분좋게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사회. 많이 웃으면 다이어트에도 좋다는데, 그런 곳에 살면 살도 더 잘 빠지고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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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재상, 『중앙일보 사설 칼럼』, 「당신이 뭘 알아」, 2002.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고
남에게 빈말을 하지 말자

